가지는 ‘보라색’ 채소다
먼저 가지를 떠올려보자. 반짝이는 보랏빛 껍질,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 구워도 맛있고 볶아도 맛있는 채소다. 그런데, 가지가 단순히 요리 재료를 넘어 건강에 꽤 유익하다는 소문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가지가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고지혈증이나 고콜레스테롤로 고민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가 매우 솔깃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보자. 가지가 콜레스테롤을 진짜 낮출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과장된 말일까? 지금부터 그 과학적 진실을 파헤쳐보자.
콜레스테롤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콜레스테롤이 뭔지 알아야 한다. 콜레스테롤은 흔히 ‘나쁜 것’이라고 오해되지만, 사실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지방질이다. 세포막을 만들고, 호르몬을 합성하며, 비타민 D를 만드는 데에도 관여한다. 문제는 ‘너무 많을 때’다. 특히 LDL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쌓이면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의 위험을 높인다.
반대로 HDL 콜레스테롤은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져 있는데, 혈관에 쌓인 LDL을 회수해 다시 간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총 콜레스테롤 수치’뿐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종류가 많은지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가지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성분: ‘나스닌’
이제 가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가지의 보라색 껍질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항산화 성분이 바로 **‘나스닌(nasunin)’**이다. 이 성분은 안토시아닌 계열의 항산화물질로, 강력한 활성산소 제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 몸 속에서 세포를 산화시키고 노화시키는 유해 산소들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나스닌이 콜레스테롤 수치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농무부(USDA)나 유럽의 식품영양 관련 논문들에서는 가지의 나스닌이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다수 발표했다. LDL이 산화되면 혈관벽에 들러붙어 동맥경화를 유발한다. 이를 막아주는 것이 바로 나스닌이다.
실험적 근거는 존재하는가?
이론은 멋지다. 그런데 실제 실험이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한 식품연구소에서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쥐에게 고지방 식이를 먹인 뒤, 가지 추출물을 함께 투여했더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특히 총 콜레스테롤과 LDL 수치가 감소했고, HDL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또 다른 연구는 인도에서 이루어졌는데, 여기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아니고, 간세포에 가지 추출물을 투여해 콜레스테롤 합성 효소의 억제 여부를 관찰했다. 결과적으로 간세포 내 콜레스테롤 생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가지에 들어 있는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성분의 작용으로 분석되었다.
클로로겐산의 역할
가지에는 나스닌 외에도 다양한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 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클로로겐산이다. 이 물질은 원래 커피나 녹차에도 풍부하게 들어 있는데, 가지에도 제법 많이 들어 있다.
클로로겐산은 혈당 조절, 항산화, 항염 작용에 뛰어나며, 간에서의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즉, 간접적으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클로로겐산은 체내의 지질대사에도 관여하여 체지방 축적을 억제하는 작용까지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 가지 많이 먹으면 되는 걸까?
여기서 잠깐. “콜레스테롤 낮춘다며? 그럼 가지 매일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지에 들어 있는 유효 성분이 실제 효과를 보이려면, 일정량 이상을 지속적으로 섭취해야 하고, 가공 방식에 따라 영양소가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지를 튀기면 어떻게 될까? 가지는 스펀지처럼 기름을 흡수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튀기거나 기름에 볶으면 오히려 칼로리가 높아지고 건강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튀김가지’는 채소라는 인식과 달리, 지방 함량이 상당히 높아지는 요리다.
따라서 가지를 ‘약’처럼 먹고 싶다면 굽거나 쪄서, 껍질까지 먹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다. 껍질에 나스닌과 클로로겐산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지를 먹을 때 주의할 점
가지가 아무리 몸에 좋다 해도, 아무나 아무렇게나 먹어도 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위장이 약한 사람은 가지의 찬 성질 때문에 소화에 불편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찬 음식에 민감한 체질이라면 주의가 필요하다. 생으로 먹는 것보다는 반드시 조리해서 섭취하길 권장한다.
또한, 알레르기 체질이거나 특정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은 전문의와 상담 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가지는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단백질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밤에 많이 먹으면 복부 팽만감이나 설사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가지는 ‘만능약’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가지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고지혈증을 치료하거나 약을 대체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가지는 의약품이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거나 보완하는 데 쓰이는 보조수단일 뿐이다.
즉, 평소 식단이 고지방, 고열량이라면 가지를 몇 조각 먹는다고 해서 콜레스테롤이 낮아지지 않는다. 전체적인 식습관, 운동량, 수면, 스트레스 관리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가지는 그 전체적인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다.
당신이 만약 콜레스테롤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면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최근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말을 들었는가? 아니면 부모님이 고지혈증 약을 오래 복용 중이신가? 혹은 몸이 무겁고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는 느낌이 드는가?
그렇다면 식단을 조금만 바꿔보자. 하루에 한 끼, 가지 반찬을 추가해보는 것도 좋다. 구워도 좋고, 찜으로 해도 좋다. 껍질은 꼭 남기지 말고 먹자. 그리고 3개월 정도 꾸준히 실천해보라. 아주 미세한 변화부터 시작된다. 물론 병원 진단을 병행하며 진행해야 함은 당연하다.
결론: 가지는 ‘도움이 되는 식재료’일 뿐이다
정리하자. 가지가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닌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다. 나스닌, 클로로겐산 같은 항산화 성분이 LDL의 산화를 막고, 지질대사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는 명확하다.
다만, 그것이 치료약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식습관의 조화다. 가지는 그 안에서 유익한 퍼즐 조각 하나일 뿐이다. 이제 가지를 단순히 ‘보라색 채소’로만 보지 마라. 우리의 혈관 건강을 위해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재료다.